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문단 편집) == 전개 ==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후임 대통령을 선출함에 있어, [[유신 헌법]]에 따른 간선제, 즉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선거로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려 하자 재야인사들은 여기에 반발하면서 대통령 간선을 저지하기 위한 집회를 열기로 한다. 다만 당시가 [[계엄령]] 상황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시위를 벌일 경우 군과 경찰 등과 큰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나온 아이디어가 YWCA회관에서 결혼식을 위장해서 집회를 여는 것이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이미 18년전에 유사 사례가 있었다 아래 기타 항목 참조.] 이에 따라 [[연세대]] 복학생 홍성엽(1953~2005)과 윤정민양의 결혼식을 가장해 청첩장이 만들어졌다. 홍성엽은 실존인물이었으나 윤정민은 그해 세상을 떠난 고 윤형중 신부의 성에 '''민'''주주의 '''정'''부에서 정과 민을 따와 이름을 지어낸 허구의 인물이었다. 공안당국에서는 당연히 의심을 하였으나, 한국 결혼식 문화는 신랑 입장 전까지 신랑만 식장 입구에 서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신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집회 당일 하객들을 가장한 참가자들이 모이는 단계까지는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윽고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이 입장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성명서가 낭독되고 구호가 제창되었다. 회관에는 박수소리와 함성이 울려퍼졌으나 갑자기 대회장 단상 쪽에서 비명 소리와 의자가 내던져지는 소리가 들렸다. 윤보선과 함석헌을 미행하던 경찰들이 대회장에 들이닥쳤다. 대회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곧이어 경찰들이 출동해 대회에 참여한 140여 명을 체포했다. 이때 참여한 재야인사들은 [[윤보선]]과 [[함석헌]], 전직 국회의원이던 [[양순직]], [[박종태]]와 [[임채정]], [[문동환]], [[김상현(1935)|김상현]], [[한명숙]], [[백기완]], [[최열]], [[김경남(목사)|김경남]] 등이었다. 윤보선과 함석헌은 고령인 관계로[* 각각 윤보선이 1897년생으로 당시 82세, 함석헌이 1901년생으로 당시 78세.] 서면조사로 대체했으나 나머지 핵심 주도인물인 14명은 용산구 [[국군보안사령부]][* 지금의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당시 끌려간 백기완은 고문으로 여러 차례 혼절을 거듭하더니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당시의 고문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